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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경기자의 여행기>
아비뇽의 시간
기사입력: 2020/05/18 [12:00]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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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아비뇽 교황청 앞의 청소년 단체사진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역에 있는 아비뇽은 4.5킬로에 달하는 두텁고 높은 성벽이 띠처럼 둘러쳐져 있다. 높은 성벽 안의 교황청은 높이 50미터, 벽 두께가 4미터나 되서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견고하게 만들어져 있다. 세계사 시간에 누구나 한번쯤은 들었을 ‘아비뇽 유수’가 일어난 곳이다. 1309-1377년 까지 로마(바티칸)의 교황청이 아비뇽으로 70년간 옮겨간 사건으로 교황이 왕권과의 싸움에서 져 프랑스로 잡혀 갔다고 해서 ‘아비뇽 유수(幽囚)’라고 한다.


교황청 건물은 막강했던 중세시대 종교의 위엄을 나타내며 세계에서 가장 큰 견고한 고딕양식의 건물로 유네스코에 등재되었다. 교황청 관람은 매우 현대적이다. 입구에서 나눠주는 히스토패드(histopad)를 가지고 각방에 설치된 스캔테이블에 갖다 댄다. 그리고 나서 방의 아무 곳이나 히스토패드를 대기만 하면 자동으로 그 장소의 옛 모습이 3D 그림으로 재현되어 화면에 나온다. 신기해서 여기저기 비춰보면 과거 교황청의 위용을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다.


교황청 앞의 넓은 광장에 여러 나라에서 온 청소년들이 각자의 국기를 꺼내며 단체사진을 찍는 모습이 무척 밝아 보인다. 태극기를 꺼내는 한국 여학생의 모습을 보니 반갑다. 이제 지구의 물리적 거리는 점점 의미가 적어지고 지구촌이 되어 가고 있다. 서로를 알아보고 이해하려는 젊은이들의 이런 국제적 교류가 지구촌의 새로운 미래를 위한 원동력이 된다.


‘교황의 도시’ 아비뇽은 매년 여름 세계적인 연극축제가 자유롭게 도시전체를 흔든다. 프랑스의 연극 거장 장 빌라드(1921-1971)가 1947년 ‘아비뇽에서 예술의 주간’이라는 주제로 아비뇽의 교황청 뜰에서 한 소규모 지방예술제가 시작이었다.


엄격한 심사를 거쳐서 선정된 수준 높은 작품들은 잘 갖추어진 공연장이나 야외무대에서 열린다. 그러나 심사에 탈락한 팀들 역시 떠나지를 않고 교황청 앞 광장이나 도시 곳곳의 일상공간에서 거리공연을 하면서 연극제는 세계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격동의 정치적인 풍랑 속에서도 아비뇽 연극축제는 계속 되어야 한다는 장 빌라드의 평생에 걸친 완고한 노력은 현대무용, 음악과 춤 등 다양한 영역을 연극에 도입하여 대중과의 접촉을 확장하고 현대화하여 아비뇽연극제를 세계적축제로 만들었다.


론 강가의 고풍스러운 소도시를 세계적인 도시로 만든 장 빌라드를 사람들은 ‘아비뇽의 교황 장’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14세기 교황에 의해 만들어진 격조 높았던 아비뇽이 그 고풍스러운 매력을 무대로 펼치는 자유로운 예술들로 대중과 만나는 시간들을 펼쳐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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