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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경 기자의 세계여행기>
데카리브스트의 도시
시베리아의 파리 이르츠쿠츠
기사입력: 2019/11/29 [11:42]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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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천뉴스


바이칼 호수의 남쪽 면을 끼고 돌던 열차는 동시베리아의 이르츠쿠츠역에 멈췄다. 이곳에서 내려서 자동차로 4시간 정도, 300km를 더 가면 바이칼 호수의 알혼섬이다.


이르츠쿠츠역은 ‘여기가 정말 유배지인 그 시베리아 맞나?’ 하는 의문이 들만큼 유럽풍으로 잘 지어져 있다. 8월의 한여름인데도 쌀쌀해서 긴팔 옷을 꺼내 들고 이르츠쿠츠 시내를 돌아보았다. 전차가 오가는 시내는 유럽풍의 정갈한 건물과 러시아의 고풍스러운 목재건물이 혼재되어서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긴다.


336개의 물줄기가 모여 들어서 이루어진 바이칼호는 신기하게도 나가는 물줄기가 딱 하나라고 한다. 그것이 바로 이르츠쿠츠의 앙가라강이다. 그래서 앙가라강을 따라서 형성된 이르츠쿠츠를 바이칼의 도시라고도 한다. 물살이 거세서 한겨울에도 얼지를 않는다.


시베리아 최초의 여성수도원인 즈나멘스키 수도원이 이 앙가라 강변 인근에 있다. 양파 모양의 황금장식 첨탑들이 특색인 러시아 정교회건물이다. 명료한 녹색 지붕이 정갈하다. 마침 예배시간이어서 연기가 나는 향로를 좌우로 흔들며 금빛 예복의 사제가 들어온다.


사제들은 제단을 향해 서서 사람들과 함께 같이 의례를 드린다. 대중을 바라보며 설교를 하는 개신교 방식에만 익숙해진 시각으로 보면 낯설고 신선하다.


수도원 마당에는 데카브리스트들의 기념비와 무덤이 있다. 데카브리스트는 ‘12월(데카브리)의 사람들’이란 뜻으로 시베리아에 유배 온 사람들이다. 1825년 12월 14일, 귀족과 젊은 장교 3천명은 근대화에 뒤떨어진 조국 러시아를 위하여 전제 군주제를 타파하는 혁명을 시도했다. 그러나 거사는 당일 날 실패하고 거사를 일으킨 이들은 사형을 당하거나 모스크바에서 5000km 떨어진 시베리아 유배형(강제노동)에 처해진다.


한 겨울에 12kg이나 되는 족쇄를 차고 시베리아 이르츠쿠츠 인근으로 강제노동을 온 데카브리스트의 삶은 절망적이었다. 사면이 된다 해도 30년간 시베리아를 떠날 수가 없었다. 이 종신형에 처해진 남편을 찾아 동토의 유배지로 떠나겠다는 귀족부인들이 있었다. 당국은 떠나는 부인들을 저지하기 위해 재산, 귀족 신분을 박탈하는 등 온갖 가혹한 조건을 내밀었으나 그녀들은 가장 고귀한 인간적인 결정을 내리고 떠났다.


유배지 인근에서 원주민과 살며 데카브리스트들을 도왔다. 사면이 되어도 돌아갈 수 없는 그들은 나중에 모스크바와 유럽에 있는 친인척들의 도움으로 이르츠쿠츠를 ‘시베리아의 파리’로 만들게 된다.


가장 먼저 유배지로 달려 온 공작부인인 예카테리나의 무덤이 즈나멘스키 수도원에 있다.


헌신과 봉사로 절망의 삶에 위로가 되었던 그녀들의 삶과, 조국의 영광과 명예를 중시하며 유배지의 삶을 이겨낸 데카브리스트들이 뿌린 씨앗은 결국 러시아를 근대화로 이끈 힘이 되었다고 한다.


1856년, 특별사면으로 데카브리스트는 30년 만에 모스크바와 유럽으로 귀환할 수 있었다. 그 귀환을 보며 톨스토이(1828-1910)가 남긴 명작이 ‘전쟁과 평화’다.


시베리아의 파리인 이르츠쿠츠는 정말 데카브리스트의 도시였다. 이제 이 도시를 떠나 앙가라강의 원류인 바이칼로 향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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