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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마홀 무념 산책>
자작리
기사입력: 2019/02/06 [14:38]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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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우    문현덕

포천의 많은 마을이 그렇지만 , 자작리는 정말 아름답고 포근한 느낌을 주는 마을이다. 완만한 언덕들과 그 뒤로 버티고있는 왕방산의 위용이 느껴진다. 산 중턱에 위치한 저수지도 풍광을 더하고, 고인돌과 파발막으로 가늠할 수 있는 역사 속의 비중을 느낀다.

 

특히 이성계장군이 “장군의 터”라는 자작리의 경사진 넓은 뜰에서 말달리던 기상을 연상하면, 포천의 진수같은 생각을 금할 수 없다.

 

자작리는 문화 유씨들이 스스로 만들었다고 하여 자작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자작리는 문화유씨의 입향 시조가 들어오기 훨씬 전부터 포천의 중심지 였다고 해도무리가 없을만큼 매우 유서가 깊고, 사람이 거주한지 매우 오랜 마을이다 그 옛날 석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 하였던 흔적이 있으니, 좋은 땅임에 틀림없다.

 

석기 시대 유물로는 고인돌이 있는데 . 북방식 지석묘로 석기시대 옛 조상들의 삶의 모습을 연상해 볼 수 있다. 평지에 조성된 탁자형의 북방식 지석묘라고 한다. 하부가 일부 매몰되고 단변지석 중 일부가 없어졌으나 원형을 연상할 수 있다. 내부의 유물은 모두 도굴 당하였다고 하니, 매우 아쉽지만 축조 방법이나 크기로 미루어보면 상당히 수준 높은 생활을 누리던 부락으로 추정 된다고 한다.

 

한성백제시대의 마을 유적도 확인되었다. 자작리 유적에서는 주거지 5동과 소형유구 6개, 굴립주 건물지 1동, 구상유구 4기 등이 발굴되었다고 한다. 필시 인근의 거점 주거지였을 것이라고 생각 된다.

 

남북의 길이가 23.79m에 달하는 대형 움집터가 발견 되었고, 당시 로서는 규모가 큰 마을이라고 한다. 중국 청자편, 평형기대, 대형옹기, 삼발형토기등 유물이 출토되어 일반 마을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는 독자적인 지배영역 마을로 추정된다고 한다. 움집 바닥에서 나온 숯을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으로 분석한 결과 AD 262~615년으로 판정 됐다는 발표가 있었다.

 

자작리 뒤편 현재 저수지 근처는 “장군의 터”라고 불리는 넓은 지역이 있다 .이 지역에서 태조 이성계 장군이 말 타고, 활도 쏘았다고 한다. 지금은 6 군단이 있으니 무인들에게 어울리는 자리인가 생각해본다.

 

자작리에는 유인선 효우비(柳仁善孝友碑)’가 있다. 효도와 우애에 관한 유씨의 관행이 기록돼 있어 조선시대부터 효의 대표적인 유적이다. 과거에는 학생들이 그의 효를 배우러 자주 소풍오던 곳이기도 하다.

 

효우 유인선은 조선 성종 23년(1492년) 포천시 자작동에 태어났다. 유인선은 천성이 어질고 착해서 부모를 효성으로 섬겼으며 돌아가신 뒤에는 묘 옆에서 초려를 세워 3년상을 지냈다. 5형제가 한집에 우애롭게 사는 모습이 알려져서, 명종 4년(1549) 나라에서 효우정여를 내렸다.

 

자작리는 인근에서 가장 중심지로 꼽혔던 지역으로 파발막이 있었던 것으로도 알 수 있다.파발막은 원래 파발을 담당한 군인들이 상주하는 장소로서 국가 기간 시설 중에 하나이다.

주로 교통의 요충지에 말과 숙박시설 및 음식점등이 있어서, 말과 사람이 쉬어 가고, 급한 파발을 신속히 전하기 위해 말을 바꾸어 타기도 하는 장소이다.

 

몽골제국이 아시아전역을 지배하면서 신속한 통신 수단으로 역참을 만들고 말을 준비하여지친 말을, 역참에 준비한 말과 바꾸어 타고 ,다음 역참으로 가던 것과 비교해 볼 수있다. 역참( 파발막)은 첩보 수집의 통로로도 사용 되었는데, 자작리는 그만큼 개경이나 한양의정보를 빨리 입수할 수있는 마을이었기도 하다.

 

자작리는 포천현의 중심지로. 1905년 군청이 신읍으로 이전해 올 때까지, 면사무소가 있었다.

군청이 이전 하면서 면사무소도 같은 해에 신읍으로 이전했다

 

자작리에는 왕방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있으나 군단에서 먁고있어서 활용이 안 되고 있다.이 등산로는 경사가 제법 있지만, 상당히 단거리이므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등산로이다.자작리는 역사관광로와 저수지가로 가벼운 산책로와 왕방산으로 오르는 등산로를 만들어서 시민들의 휴식 공간과 더불어 관광 자원으로 활용 할 수 있는 마을인데 시의 무관심 속에 버려져 있는 것 같아서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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