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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경 기자의 여행기>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에서
기사입력: 2018/02/08 [16:28]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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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천뉴스

 

올 겨울은 유난히 춥다. 문고리에 손이 쩍쩍 붙던 어린 시절의 겨울 추위가 생각난다. 춥지만 여행은 겨울여행이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할 수 있어서 좋다. 그래서 더운 나라 사람들 보다 추운 나라에서 문학과 철학이 더 발달했던 것 같다. 올 겨울에 베네룩스를 여행했다.

 

베네룩스는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세 나라를 묶어 부르는 말로 유럽의 서쪽인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 있는 작은 나라들이다. 벨기에는 경상도 크기이고 네델란드는 대한민국의 삼분의 일, 룩셈부르크는 더 작아서 제주도 정도의 크기인데 이 작은 세 나라가 유럽을 움직이는 심장이라고 한다. 2016년 룩셈부르크는 1인당 국민소득이 세계1위였다. 자원도 인구도 빈약한데 어떻게 부를 창출하고 유지 하는 것일까?

 

독일의 프랑크프르트 공항에서 2시간 거리에 있는 퀼른대성당을 보고 네델란드로 이동을 했다. 튤립과 풍차로 대표되는 네델란드는 고종황제의 헤이그밀사 사건으로 우리나라 국민들에게는 낯설지 않은 나라이다. 수도인 암스테르담에 도착을 했다.

 

암스테르담의 명물은 도시를 그물망처럼 연결하는 엄청난 운하의 규모와 운하 옆으로 줄지어 붙어 있는 고풍스러운 건물들이다. 지반이 약해서 건물들을 서로서로 붙여서 짓는다고 한다. 17세기 대항해 시대인 황금시절에 폭발적으로 성장한 계획도시로 해협의 입구를 중심으로 반달 모양으로 90개의 섬, 1500개의 다리가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져 있다.

 

언젠가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데미 히데요시(풍신수길)의 영화를 봤을 때가 생각난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볼품없는 몸집의 풍신수길이 일본이 외국에 개방한 땅인 나가사키에서 네델란드 상인이 건네준 망원경과 시계를 연인처럼 소중하게 가슴에 끌어안고 자는 장면이었다. 서방의 앞선 문물을 흠모하고 실천하려는 일본지도자의 모습이었다.

 

조선이라는 땅을 유럽에 처음 알린 것이 유명한 ‘하멜표류기’이다. 일본 나가사키 항으로 가려다 조선에 표류해온 스페르베르호의 서기였던 네덜란드 젊은 청년 하멜이 쓴 13년간(1653년-1666년)의 조선에 대한 기록이다. 당시 일본의 나가사키에는 각국의 자유롭게 무역선이 드나들 때였는데 조선에  표류한  네덜란드  상인 하멜 일행은 13년 동안 조선에서 감금생활을 하다가 겨우 일본으로 탈출을 하여 귀국을 하게 된다.

 

하멜이 조선에 왔을 때 네델란드는 이미 3만5천척의 상선을 보유하고 세계무대에서 활약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해서 물리학, 미생물학, 법학, 미술 등의 부흥이 크게 일어나던 때였는데 하멜을 통해서 조선은 시대를 읽지 못했을까? 읽었더라도 시대를 타파할만한 상황이 될 수 없었던 것일까?

 

당시 유럽의 왕정과 상류층에서는 육로를 통해 중국에서 아랍상인들이 가져온 청화 백자를 장식하는 것이 부의 상징이어서 부가가치가 높은 물건이었다. 네델란드 상선도 바다 길을 헤치고 최대의 도자기 산지인 중국남쪽의 경덕진에 왔는데 내란으로 구입을 할 수가 없게 되자차선책으로 일본의 문을 두드리게 된다. ‘이런 것을 만들 수 있냐고...’

 

당시 일본은 임진왜란 때 끌고 갔던 조선의 도공이 우여곡절 끝에 400년은 쓸 수 있는 거대한 백자광맥을 발견해서 생산을 할 수 있는 때였다. 드디어 일본은 네델란드 상선으로 부터 만 오천 개의 도자기를 주문 받고 서방과 무역을 시작해서 200여 년 간의 교류를 하게 되고 그 부와 신문물이 차곡차곡 쌓아져서 세계대전까지도 일으킬 수 있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

 

그 당시의 네델란드 무역항이 이 암스테르담이다. 동방에서 온 갖가지 진기한 물건들과 최고의 상인들, 유럽의 부호들로 거리는 활력이 넘쳤고 경치 좋은 운하 근처는 고급주택들이 즐비해서 높은 천장의 멋진 샹드리에 아래 근사한 그림과 음악이 흐르고 왁자한 파티가 열리는 세계에서 가장 자유 분방하고 활기찬 도시가 암스테르담이었다.

 

네델란드의 학교와 가정은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자율적인 실습을 통한 경제관념을 가르친다. 4월말 여왕탄신일의 연휴에는 모든 상점들이 문을 닫고 대신에 어린이들에게 벼룩시장을 열어준다고 한다. 스스로 노력해서 얻는 가치에 대한 경험은 건전한 경제관념과 창조적인 교육으로 이어져 12세가 되면 아이들은 스스로 진로를 결정한다. 이곳 아이들의 행복지수는 세계1위를 놓치지 않는다고 한다.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창조적인 사고의 환경이 주어져 와이파이나 블루투스도 네델란드 사람에 의해 발명이 되었다고 한다.

 

작은 내수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해외 시장 개척의 생존전략 밖에는 없기에 주요수출국의 언어 3,4개를 대학을 졸업할 무렵이면 능숙하게 구사하게 할 수 있도록 교육필수로 만들어 놨다. 우리나라 역시 수출에 의해 성장을 이루고 있는 나라인데 주수출국의 언어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었던가? 출중한 외국어 실력과 글로벌마인드로 무장한 까닭에 대항해시대를 주름잡던 그들의 선조들처럼 글로벌 비즈니스의 곳곳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여행을 하다보면 낡고 불편한 몇 가지 눈에 보이는 요소들 때문에 ‘사는게 우리나라만 못하네’라고 하는 자랑스런 한국인들의 말을 종종 듣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간과하고 있다. 그들은 사고가 선진국이다. 소비와 환경, 교육에 대한 올바른 사고를 형성하고 실천하는 네델란드에 한국의 유학생도 많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이혜경 포천뉴스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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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를 읽은후 장군 18/02/16 [11:14] 수정 삭제
  좋은글 공감이갑니다 다만 일본의 침략을 약간 미화한듯한 뉘앙스가 걸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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